▲ 땅끝마을 앞에 있는 맴섬 해돋이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 이종찬
해남문학축전

 

해남 땅에선 두려움 없이

새로운 공화국이 일어선다.

  

고산(孤山)공화국에 이어 오늘은

남주(南柱)공화국의 나라깃발이 펄럭이는 날,

 

쫓기고 쫓기어 벼랑 끝에 다다른

귀양 유민(流民)들의 열망이 한데 뭉쳐,

  

어느 날 함께 잡고 오를

튼실한 개벽(開闢)의 동아줄을 엮고 있다.

 

-윤재걸, '유배공화국, 해남 유토피아 만세!.1' 모두

 

  
8일 열리는 제10회 해남문학축전
ⓒ 이종찬
해남문학축전

2008년 가을이 저물고 있다. 이 늦가을이 저물고 나면 또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로 접어들게 된다. 해마다 이맘때가 다가오면 사람들은 누구나 '다사다난'이란 말을 자주 입에 담곤 한다. 하긴 사람살이란 게 다사다난하지 않은 때가 어디 있었던가. 하지만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올해는 그야말로 다사다난하다.

 

미국산 미친 소 수입 전면개방을 시작으로 고위 관료 비리, 고유가, 생필품값 상승, 환율 급등, 촛불집회 등. 국가와 국민 모두를 총체적 위기로 몰고 온 이명박 정부는 지금도 허상만 부여잡고 마구 허둥대고 있는 것만 같다. 여기에 고위 관료들의 잦은 말 바꾸기, 앞뒤 가리지 않고 마구 내뱉은 막말 등을 듣고 있으면 부아까지 치민다.

 

하지만 세상이 이렇게 어수선한 데도 불구하고, 꿋꿋이 문화예술의 뿌리를 더욱 단단하게 다져온 문화예술인들이 있어 그나마 다행스럽다. <한국문학평화포럼>이 그들이다. 이들은 이 땅 곳곳에서 소외 받으며 억울하게 희생당했고, 힘겹게 살아오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역사의 현장을 찾아 시와 소설, 춤과 노래로 그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왔다.

 

그렇다고 이 단체가 올해 10차례에 걸쳐 치러내는 행사에 국가가 재정을 많이 지원해 준 것도 아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는 지원비가 너무 적어 이 단체 소속 회원들과 참가자들이 쌈짓돈을 털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위태위태하게 행사를 치러왔다. 이는 모두 이 땅을 살아가는 문학예술인으로서 바른 길을 걷기 위해서였다.          

 

  
▲ 김남주 민족시인 김남주 서가에 있는 사진
ⓒ 강기희
김남주

 

  
김남주 생가
ⓒ 이종찬
김남주생가

민족시인 김남주 생가 마당에서 열리는 올해 마지막 문학축전

 

"우리 국토의 최남단 해남 땅끝은 한반도의 꼬리로서 한국 시조문학의 효시인 고산 윤선도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 묵객들을 배출한 땅이자 유배지로써 시대적 저항정신이 응집된 곳이다. 우리는 우리 국토의 땅끝에서 우울한 시대적 상황을 뚫는 하나의 혜안과 눈부신 희망의 미학을 찾으려 한다."-제10회 해남문학축전 '인사말' 몇 토막 

 

지난 7월13일 안성 새터민문학축전을 시작으로 안산·태안·소안도·마라도·태백·속초·강화·여순 등지에서 숨 돌릴 틈 없이 열린 '국토, 모심, 평화를 위한 문학축전 2008'. 이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한국문학평화포럼'이 국토의 끝자락인 해남 등지에서 올해 마지막 행사를 치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민족시인김남주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후원은 국무총리복권위원회·광주전남작가회의·한미약품.

 

8일(토) 오후 4시부터 9일(일) 오후 3시까지 이틀 동안 전남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 있는 민족시인 김남주 생가 마당과 고정희 시인 생가·고산 윤선도 유적지 녹우당·땅끝마을 등지에서 열리는 제10회 해남문학축전이 그것. 이번 행사는 크게 식전행사와 본 행사, 문학기행 등 3부로 나뉘어져 있다.

 

이날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1시간 동안 김남주 생가 마당에서 열리는 식전행사는 작가 김영현(한국문학평화포럼 회장)의 '작가와의 대화'에 이어 문인 30여 명이 해남지역 주민들과 청소년들에게 자신이 펴낸 책을 특별 증정하는 시간이다. 이 자리에는 작가 김영현·시인 나해철·홍일선·박희호·박선욱·이승철·박두규·김기홍·이소리·김선태·김여옥·조성국 등이 참석한다. 

 

  
▲ 사진은 여순문학축전 구순의 이기형 선생이 여순사건 때 희생된 희생자 묘역에 잔을 올린 뒤 모두가 묵념하고 있다
ⓒ 한국문학평화포럼
한국문학평화포럼

 

늦가을 해남 밤하늘에 띄우는 시와 노래 그리고 춤

 

저녁 6시부터 작가 강기희 사회로 열리는 본 행사는 작가 김영현의 인사말과 작가 이명한의 축사를 시작으로 해남민예총풍물위원회의 '길놀이', 고 김남주 시인 육성시낭송 '이 가을에 나는', 김기인과 스스로춤모임(서울예대 무용과)의 '현대춤' 공연이 펼쳐진다. 진행은 시인 김경윤(민족시인 김남주 기념사업회 회장), 연출은 윤미나(영화감독).

 

저녁 6시 30분에는 평화시 낭송 첫 번째 순서로 시인 윤재걸(언론인)·강상기·김여옥·김선태·김충식 해남군수가 나와 해남과 땅끝에 얽힌 역사와 삶이 담긴 시를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 속에 읊어낸다. 이어 시인 박선욱(성악가·바리톤)의 노래, 장순향한반도춤패(한양대 무용과)의 전통춤 공연, 해남 민예총 소속 이병채의 판소리가 늦가을 밤을 수놓는다.

 

평화시 낭송 두 번째 순서에는 시인 나해철·김사이·김경옥·이소리가 나와 고산과 고정희, 김남주의 문학과 삶이 담긴 시를 읊는다. 이와 함께 가수 인디언수니의 노래, 김남주 시인 동생 김덕종과 김남주 시인 아들 김토일(성공회대 학생)의 유족 인사말, 해남교사 노래패 '스쿨밴드'의 시노래 공연, 민예총 풍물위원회의 어울마당이 펼쳐진다. 

 

문학기행은 식전행사 앞과 본 행사 뒤, 두 차례에 걸쳐 열린다. 8일(토) 열리는 문학기행은 이날 오후 1시30분부터 <강진문화기행>의 저자 김선태(목포대) 교수의 안내로 김영랑 생가, 다산 초당, 시인 고정희 생가 등지에서 열린다. 9일(일) 열리는 문학기행은 대흥사, 녹우당, 고산 윤선도 기념관, 미황사, 땅끝마을 등지를 둘러본다.

 

  
▲ 고산 윤산도 유물관 해남은 16세기 이 땅의 선지식인 고산 윤선도 선생의 문학적 산실이자 시대정신과 저항정신의 발주처
ⓒ 이종찬
고산 윤선도

 

토말이란 이름이 왜 땅끝으로 바뀌었을까? 

 

"흔히들 해남 땅끝을 한자어로 토말(土末)이라 쓰고 있으나 그것은 올바른 표기가 아니다. 해남 땅끝의 행정구역상 지명은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葛頭里)로서 이곳은 원래 조그만 어촌 마을에 불과했다. 하지만 1981년 오경석 해남군수가 이곳에 비를 세우고, 전망대와 봉화대 등을 복원해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토말(土末)이라는 새로운 지명은 이때부터 등장했다." -해남 출신 시인 김여옥

 

김여옥 시인은 "토말이라는 이름은 일제가 지말(地末)이라 새겨진 이곳 표석의 지(地)에서 이끼 야(也)자를 자의적으로 떼어낸 일본식 표기라는 논란이 생겼다"고 말한다. 김 시인은 "이 때문에 지역의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여 '토말' 대신 '땅끝'이라 이름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한국문학평화포럼 김영현(소설가) 회장은 "조선시대 700여 명의 유배자 중 35%가 전라도로 유배되었으며, 전라도 유배자 중 50%가 전남 해남에서 유배생활을 했다""고 지적한다. 김 회장은 "해남은 16세기 이 땅의 선지식인 고산 윤선도 선생의 문학적 산실이자 시대정신과 저항정신의 발주처"라며 "이는 조선 중기 한글로 시를 쓴다는 자체가 당시 양반사회의 금기에 도전한 확고한 저항정신의 발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단원 김홍도, 겸제 정선과 더불어 조선의 3대 화가로 세종 때 활약한 조선 산수화의 1인자 안견(주요 작품 '몽유도원도')의 고향 역시 해남"이라며 "해남은 한국 현대 시문학에 있어서도 한국인의 한과 멋을 우리 고유의 전통적 정서와 리듬에 담아낸 이동주, 박성룡 시인을 배출한 곳"이라고 덧붙였다.

 

  
▲ 대흥사 단원 김홍도, 겸제 정선과 더불어 조선의 3대 화가로 세종 때 활약한 조선 산수화의 1인자 안견(주요 작품 '몽유도원도')의 고향 역시 해남이다
ⓒ 이돈삼
대흥사

 

김남주·고정희·윤재걸·김준태·황지우 등 줄줄이 배출한 시의 고장 해남

 

한국문학평화포럼 이승철(시인) 사무총장은 "해남의 문학정신은 1980년대 민족문학, 저항문학의 상징인 김남주 시인과 현대 시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여성시인으로 평가되는 고정희 시인을 낳기도 했다"고 말한다. 이 총장은 "해남은 김준태·노향림·윤재걸·윤금초·황지우 시인 등 약 30여 명의 굵직한 문인을 배출함은 물론 이청준·김지하·황석영 등의 제2의 문학적 고장으로도 유명하다"고 설명한다.

 

이 총장은 또 "해남은 다산 정약용의 목민철학을 산실으로서 한국 정신사의 맥통을 잇는 곳이기도 하다"며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이자 조선의 선비화가로 유명한 공재 윤두서 선생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외증조부로서 다산의 목민철학을 완성하는 데 절대적인 후견인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고산의 11대 직손인 시인 윤재걸(언론인)은 "고산은 해남 현산면 금쇄동과 완도 보길도 등을 오가며 <어부사시사><오우가> 등의 불후의 시조문학을 순 한글로 창작하여 한국 고전시가의 효시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윤 시인은 "고산은 광해군 시절 성균관 유생 신분으로 당시의 최고 권력자인 이이첨·박승종 등의 죄상을 규탄, 탄핵하는 '병진소'(丙辰疏)를 올려 함경도 경원으로 첫 유배를 당했다"고 말한다.

 

윤 시인은 또 "고산은 4차례, 20여 년간의 유배생활, 19년간 은거생활을 하는 등 조선 선비정신의 표상이었다"며 "고산은 자신이 데리고 있던 800여 명의 노비문서를 불태워 해방시켰으며,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보다 100년을 앞서 우리나라 전도를 만드는 등 문학·천문·지리·의학 분야에 해박한 식견을 갖춘 시대의 선각자였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행사 서울 참가자는 7일(금)까지 홍일선(011-9775-3277), 이승철(010-2214-1902)에게 참가신청을 한 뒤 8일(토) 아침 7시 40분까지 서울 사당역 S오일주유소 앞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타면 된다. 8시 정각 출발. 해남 참가자는 김경윤(011-9602-2974), 광주 참가자는 윤정현(011-625-1742)에게 연락하면 된다.

 

못난 시 버리고 억울한 삶 깨치려 땅끝에 왔네

끝과 시작을 여닫는 바닷가에 서서

보길도 보고도 고산 모르는 가슴 없는 사람들 바라보며

고정희 김남주 생가에서 사진만 찍는 눈 먼 사람들 바라보며

그대 품기 위해 반역의 눈 두리번거리네

......

참시 주우러 새 삶 주우러 땅끝에 왔다가

그 초심마저 갯바위 속에 유배되고 말았네

만나는 사람 모두가 시인인 나라

방방곡곡 시들이 병신춤 추는 나라   

그 나라에 시가 없다네

그 나라에 희망이 없다네

 

이소리,'땅끝마을에 서서' 몇 토막

2008.11.04 18:08 ⓒ 2008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