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 368호 보길도윤선도유적(甫吉島尹善道遺蹟)이
명승 제 34호 보길도윤선도원림(甫吉道 尹善道 園林) 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뀐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문화재청에 의하면
문화재 지정기준의 혼돈을 해소하고 일반인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하여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광한루원」 등 5개소 문화재를 개정된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 제2조 별표1(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준, 2007.8.29 개정)에 따라 명승으로 재분류하고자 문화재보호법 제7조 ․ 제16조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2조 제4항 규정에 의거 다음과 같이 지정 및 해제 예고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지정 및 해제 예고 기간 중(2007.11.14~12.13) 의견 있으신 분은 의견 제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재분류(사적 해제, 명승 지정) 예고 대상 문화재

ㅇ 광한루원(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 78번지 등)

ㅇ 담양 소쇄원(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 123번지 등)

ㅇ 보길도 윤선도 원림(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 200번지 등)

ㅇ 성락원(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22번지 등)

ㅇ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 115번지 등)


종 목 명승 제34호

명 칭 보길도윤선도원림(甫吉道 尹善道 園林)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원

수량/면적 480,728㎡

지 정 일 2008.01.08

소 재 지 전남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 200번지 등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완도군외3명

관 리 자 완도군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는 여러 차례에 걸쳐 정치적 다툼으로 유배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가 고향인 해남<海南>에 있을 때 병자호란<丙子胡亂>의 소식을 듣고 배를 타고 강화도<江華島>에 이르렀으나, 인조<仁祖>는 이미 남한산성 <南漢山城>으로 옮겨 적과 대항하다가 항복한 후였다.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한 고산은 세상을 등지고 탐라<耽羅>(제주도)로 가는 길에 이곳 보길도<甫吉島>의 산세가 수려함에 매혹되어 머물게 되었다 한다.

보길도는 그가 영조<英祖> 15년(1637) 51세 때부터 여러 차례 출입을 하면서 별서<別墅>를 짓고 13년간 글과 정서를 닦으며 어부사시사<漁夫四時詞> 등 시가를 창작한 국문학의 산실<産室>이기도 하다. 격자봉<格紫峰> 밑에 낙서재<樂書齋>를 지어 주자학<朱子學>을 연구하고, 이 일대에 소은병<小隱屛>, 낭음계<朗吟溪>, 오운대<五雲臺>, 독등대<獨登臺>, 상춘대<賞春臺>, 언선대<偃仙臺> 등 바위에 이름을 붙여 자연에 묻혀 자연과 대화하며 별서<別墅>를 경영<經營>하였다. 또 낙서재의 건너 개울가에 연못을 파고 집을 지어 곡수당<曲水堂>이라 하고, 낙서재 건너 산 중턱 절벽 위에 한칸 집을 짓고 동천석실<洞天石室>이라 하여 독서하며 선경<仙境>에 노닐었다. 계곡을 따라 동북쪽으로 내려가면 계간<溪澗>을 판석보<板石洑>로 막아 계담<溪潭>을 조성하고 물을 돌려 방지<方池>를 이룩하고 방지 옆에 단<壇>을 쌓고 세연정<洗然亭>을 지었다. 이곳이야말로 조선시대<朝鮮時代> 별서조원<別墅造園>의 아름다운 조영<造營>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