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선생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던 문인들은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요?

선생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은 많았을 것으로 사료되나 기록에 나타난 바로는 그 수가 많지 않다. 그것은 고향에 돌아와서는 산속이나 바다 한가운데에 거주하셨고, 또한 유배를 가서는 그곳의 아픈 사람들에게 의술을 펼친 때문이기도 하다.

보길도에 계실 때는 학유공 정유악과 진사 심단, 처사 이보만, 생원 안서익 그리고 학관 직미(5남) 등 수명과 더불어 같이 거처하면서 고산선생에게 과업을 강학받았다.

▷ 정유악(鄭維岳): 1632(인조 10) - ? 자(字)는 길보(吉甫), 호(號)는 구계(구溪). 동촌(東村), 뇌경(雷卿)의 아들. 1652년(효종 3) 진사(進士)가 되고, 1666년(현종 7)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 (丙科)로 급제, 1675년(숙종 1) 승지(承旨)로서 인사(人事)와 형상(刑賞) 등에 환관(宦官)을 간여케 하는 왕을 간(諫)하다 파직되었으나, 허 적(許 積)의 상소로 다시 기용되어 북한산성(北漢山城) 축조(築造) 때 도청(道廳)을 지냈다. 그 후 좌승지(左承旨). 공조 참판(工曹參判). 도승지(都承旨)를 역임하고,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에 남인(南人)으로서 극변(極邊)에 안치(安置)되었다. 1685년 전리(田里)에 방귀(放歸),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경기도 관찰사(京畿道觀察使)에 등용, 이듬해 형조 판서(刑曹判書)가 되었다. 1694년 갑술옥사(甲戌獄事)로 다시 진도(珍島)에 안치되었다가 1697년 전리에 방귀, 1699년 방송(放送)되었다.

▷ 심단(沈檀) : 1645~1730. 본관 청송(靑松). 자 덕여(德輿). 호 약현(藥峴) ·추우당(追尤堂). 어려서 고아가 되어 외숙 윤선도(尹善道)에게서 자랐다. 1662년(현종 3) 진사가 되고, 1673년 정시문과에 급제, 사관(史官)이 되었다. 1675년(숙종 1) 승정원주서 ·전적, 1677년 홍문관수찬이 되고 이조정랑 ·응교 등을 지냈다. 1683년 서인(西人)이 노론 ·소론으로 분당될 때 소론에 속하여 노론을 공격하다 파직, 1689년 기사환국 때 이조참의로 등용되었다. 그 후 이조 ·공조의 판서, 한성부판윤 ·의금부판사(義禁府判事)를 거쳐 1730년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 처사 이보만
▷ 생원 안서익

그리고 영덕에 계실 때는 영덕군지에 나타난 바로는

▷ 신이효(申以孝, 1602~1649) : 본관은 평산으로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및 잠와(潛窩) 이명준문(李命俊門)이며 천자온진(天姿溫陳)하며, 학문정박(學問精博)하였다.

▷ 신석보(申碩輔) : 본관은 평산으로 신종망의 아들이다. 고산 윤선도의 문인으로 외모가 헌출하였으며, 타고난 자질이 남달랐다. 고산 윤선도에게 배워서 학문의 요체를 안다는 소리를 들었으며, 이를 몸소 실천하여 세상에서 칭송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