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가사

 

 

 

                                              
   고산가사(孤山歌辭)는 고산유고 권6  하별집에 실려 있는 국문학상 귀중한 자료인 고산의 시조 75수의 한글시가를 특별히 지칭한 것이다    

김사엽 같은 이는 "고산으로 말미암아 조선어의 미가 발견되고 조선어를 예술적으로 숭화 양양했다고 본다. 송강이 이미 그 가사를 통하여 더 없이 아름다움을 밝혀놓았거니와 고산에 이르러 한결 더 깊이 넓게 되고, 캐내어 그 아려(雅麗)함을 천명하였다. 한문이란 밀림 속에서 유교라는 정글 속에서 우리말을 찾기란 그 당시에 있어서 지난(至難)하다기 보다 불가능에 가까운 공부이었을 것인데 대담하게도 이것을 시험에서 훌륭히 성공하였다."

   「산중신곡」의 작품들은 고산선생이 경상도 영덕에서 유배생활을 하다 금쇄동에 돌아와 자연에 묻혀지낼 때의 소작(所作)으로 속세의 혼란한 사회를 떠나 자연과 친화하며 자연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특히 「오우가」는 자연을 노래한 시가(詩歌)의 압권으로 그 시상(詩想)이 탈속(脫俗)하여 선경(仙境)에 들어간 듯하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극도로 잘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어부사시사」40수는 고산선생이 65세 때인 1651년 가을에 보길도 부용동에서 지은 연시조(連時調)로, 원래 고려 때부터 세전(世傳)되던 「어부가」를 명종(明宗)때 농암(聾岩) 이현보(李賢輔)가 「어부가」 9장으로 개작하여 즐겼고, 퇴계 선생도 이를 탄상(歎賞)하여 마지 않았다. 그러나 음향(音響)이 서로 호응되지 아니하고, 말의 뜻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여 고산선생이 그 내용의 뜻을 풍부하게 더 넓히고 우리말을 사용하여 시조의 형식으로 개작(改作)한 것이다. 고산선생은 발문(跋文)에서 작시의 동기를 밝히고 있다. 원가(原歌)와 이현보(李賢輔)의 개작가(改作歌)는 한문(漢文) 고시(古詩)에 토(吐)를 붙인 정도에 불과하였으나 고산선생은 난삽한 한시구(漢詩句)를 순 우리말로 바꾸었으며 특히 기교면에서의 대구법(對句法)의 처리, 시간의 경과에 따른 시상(詩想)의 전개와 그 조화는 볼 만하다.
   고산선생은 국문학 특히 시조창작의 거봉으로서 선생의 시정신은 자연을 대상으로 하여 자연과 합일된 경지를 개척하여 놓았고, 특히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시(詩)에 활용하여 성공한 작가이다.
   본서(本書)는 고산선생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일편(逸篇)이며, 특히 권6 별책하는 시조문학을 연구하는 데 필독의 서(書)라고 할 것이다.
   규장각에 소장된 본(本)은 책명은 ≪고산집(孤山集)≫이라고 되어 있으나 그 내용은 고산유고의 권6과 동일하다.
                                                                  
   권6 하 별집에 수록된 작품은 다음과 같다.
 

 



<친필본 산중신곡>
 

산중신곡(山中新曲) 18, 고금영 1, 합 19수

    만흥(漫興) 6 조무요(朝霧謠) 1 하우요(夏雨謠) 2 일모요(日暮謠) 1 야심요(夜深謠) 1
    기세탄(饑歲歎) 1 오우가(五友歌) 6
    고금영(古琴詠) 1 고금영 발(跋) 고풍(古風) 1편

 


산중속신곡(山中續新曲) 2수:

    추야조(秋夜操) 1 춘효음(春曉吟) 1

증반금(贈伴琴) 1
초연곡(初筵曲) 2
파연곡(罷宴曲) 2
몽천요(夢天謠) 3 번몽천요(飜夢天謠)
견회요(遣懷謠) 5
우후요(雨後謠) 1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40   어부사시사 발(跋)
어부사여음(漁父詞餘音) 1

   
산중신곡(山中新曲)은 고산선생의 작품명을 빌려 책명으로 삼은 것. 
     
고산선생이 손수 쓴 필사본 가첩(歌帖). 1798년(정조 22)에 재간된 선생의 시문집 《고산유고(孤山遺稿)》
     권6 <하별집(下別集)> <가사(歌辭)> 편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 시조들은 그가 56세 때인 1642년(인조 20)에 지은 것으로, 병자호란에 임금을 호종(扈從)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상도 영덕(盈德)에서 귀양살이하다가 풀려나와 전라남도 해남의 금쇄동(金鎖洞)의 자연 속에 묻혀 살던 때의 작품이다.

    《만흥(漫興)》 6수, 《조무요(朝霧謠)》 1수, 《하우요(夏雨謠)》 2수, 《일모요(日暮謠)》 1수, 《야심요(夜深謠)》 1수, 《기세탄(饑歲歎:饑歲謠)》 1수, 《오우가(五友歌)》 6수, 《고금영(古琴詠)》 1수로 되어 있다. 《산중신곡》은 가첩에 19수가 적혀 있으나, 《고산유고》에는 《오우가》까지의 18수를 《산중신곡》에 넣고 《고금영》은 59세 때의 작품이라 하여 독립시켜 놓았다. 그러나 《고금영》은 자필본 가첩과 《고산유고》 권1의 49장에 따라 고산이 56세 때인 임오년 작품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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