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신곡

 

 

 

                                               
 
  산중신곡(山中新曲)고산선생이 손수 쓴 필사본 가첩(歌帖)으로 전라남도 해남(海南)의 종가(宗家)에 전하고, 1798년(정조 22)에 재간된 작자의 시문집 《고산유고(孤山遺稿)》 권6 <하별집(下別集)> <가사(歌辭)> 편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 시조들은 그가 56세 때인 1642년(인조 20)에 지은 것으로, 병자호란에 임금을 호종(扈從)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상도 영덕(盈德)에서 귀양살이하다가 풀려나와 전라남도 해남의 금쇄동(金鎖洞)의 자연 속에 묻혀 살던 때의 작품이다.

《산중신곡》은 가첩에 19수가 적혀 있으나, 《고산유고》에는 《오우가》까지의 18수를 《산중신곡》에 넣고 《고금영》은 59세 때의 작품이라 하여 독립시켜 놓았다. 그러나 《고금영》은 자필본 가첩과 《고산유고》 권1의 49장에 따라 고산이 56세 때인 임오년 작품으로 보인다.

 

 

 


그 구성은 다음과 같다.


만흥(漫興) 6수 조무요(朝霧謠) 1수 하우요(夏雨謠) 2수 일모요(日暮謠) 1수 야심요(夜深謠) 1수

기세탄(饑歲歎:饑歲謠) 1수 오우가(五友歌) 6수 고금영(古琴詠) 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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