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쇄동집고

 

 

 

                                               
 
  금쇄동집고(金鎖洞集古)는 고산선생이 금쇄동에서 지은 작품집으로, 산중신곡(山中新曲)과 같은 12폭(幅)의 섭책본(섭冊本)인데 세로가 28.6cm 가로가 11cm 크기의 무늬가 있는 남색천(濫色紗)으로 된 표지에 금쇄동집고란 표제(標題)가 쓰였다. 1폭의 여백을 두고, 시조 3수가 실려 있는데 작품으로는 증반금(贈伴琴) 1수와 동발(同跋)이 실렸고, 이어 산중속신곡(山中續新曲) 2장이 수록되었다. 그것은 곧 추야조(秋夜操) 1수와 춘효음(春曉吟) 1수다. 증반금은 선제후사(先題後寫)의 기사(記寫)지만 산중속신곡인 추야조와 춘효음은 선사후제(先寫後題)의 기사형식을 취한 것이 시본 산중신곡과 같다. 폭마다 괘선(掛線)이 쳐여져 있고 기사형식은 한글 표기로 된 연서기사법(連書記寫法)을 써서 세 줄박이로 되었으나 분구(分句)의 구분은 없고, 다만 분장(分章:首)의 구분만 되어 있다.
   그리고 작품의 제작연대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 시본 산중신곡과는 다른 점인데 증반금은 <백계 중추(白鷄 仲秋)>이라 되어 있고, 추야조는 <백계(白鷄)>로만 되어 있으며, 춘효음은 <적견(赤犬)>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시본이 윤고산의 육필본이라는 점으로 보아 이러한 기록은 고산시의 창작연대를 고구(考究)하는데 중요한 자료적 의의를 가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시본은 작품의 창작연대나 시의 원철(原綴)이나 원형(原型)을 상고하는데 절대적 고증자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볼 때 증반금은 <백계(白鷄)> 곧 을유년(1645A.D) 중추에 지은 것이고, 추야조도 같은 을유년(1645A.D) 가을인 것이다. 그러나 춘효음은 그 이듬해인<적견(赤犬)> 곧 병술년(1646A.D) 봄에 지었음을 알 수 있다.
 

 

 


그 구성은 다음과 같다.

   반금

   증반금 1, 동발

 
 산중속신곡 2장

    
추야조 1 춘효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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