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선생이 주거처인 낙서재를 지을때 집 뒤쪽의 바위를 소은병(小隱屛)이라 명명하였는데,
그것은 주자가 은거했던 무이구곡(武夷九曲)의 대은병에 비유한 것이다. 주자는 그의 시 「무이구곡(武夷九曲)」에서 "일곱 굽이에 가서 배를 옮겨 푸른 여울 올라가니 은병선장을 다시 돌아보더라.(七曲移船上碧灘 隱屛仙掌更回看)"라고 했다.

고산선생은 소은병이 송나라 주자가 경영하던 무이산의 대은병보다 작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지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