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선생께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차를 사랑하여 즐겨드셨지만 직접 차에 관한 글을 남기지 않았다하여 그동안 차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고산유고 권1 60쪽에서 찾아낸 복차계하운(復次季夏韻)이란 시에 차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어 김기원교수(진주산업대학교, 차학회회장)를 통해 한국차학회지 제3권 2호(1997년 12월)에 발표함으로써 학계에 선을 보이게 되었다.

復次季夏韻

山近人寰俗自賖
景休君說我曾誇
周遭秀發千重岫
面背縈紆十里沙
小屋短籬如辦得
麤茶糲飯不須加
終然未愜心期遠
長憶芙蓉洞裏家

산중에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자연스레 빌려씀이 풍습이라니
경휴군 말에 처음 의아하게 여겼음이
사방엔 첩첩이 겹친 산봉우리 빼어나게 아름다웠고
뒷면엔 십리나 되는 모래밭은 구불구불 마을따라 감싸있구나
오두막집 낮은 울은 공들여 세워 놓은 것 같고
거친 차와 현미밥은 기다리지 않았어도 내 오누나
끝내 기대함이 소원하여 아직도 마음에 들지 않음은
오랫동안 회상했던 부용동의 내 집 탓인 것을

이 시는 1652년 임진년 4월 28일 보길도에서 쓰여진 것으로 보길도에는 고산선생과 관련된 차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고산선생이 차를 재배하였던 밭 때문에 붙여진 차밭골(茶田谷), 그리고 동천석실부근에는 차를 달이는 물을 길러 썼던 차샘(茶泉), 차를 끓였던 돌부뚜막(茶0), 부용동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차를 마셨던 차바위(茶巖)의 찻자리 등이 있지만 조명을 받지 못하였다.

그리고 또 다른 차시가 부용동팔경이라는 시에 있다.

제5경인 석실모연(石室暮煙).

晩風吹海引香烟
散入嵯娥石室邊
九轉丹成餘古竈
一甌茶沸掬淸川

바다에서 부는 만풍향연을 끌어와서
높고 험한 산에 들어 석실 가에 흩어진다
묵은 부뚜막엔 선약이 남아 있고
움켜온 맑은 물은 차 사발에 끓고 있네

石室茶廚起夕烟
如雲如霧擁花邊
隨風欲去還留砌
輿月無端更宿川

석실의 부엌에선 차 끓인 연기 이니
구름인 듯 안개인 듯 무늬져 끼고도네
바람에 날려가다 섬돌에 도로 남고
달빛에 실려가서 냇물 위에 머무네

제4경인 수당노백(水堂老柏)

滿山蒼翠白花新 一種油茶早得春
岸柳深黃唯艶態 閣梅全潔自千眞
雪中暖馥靑羅帳 霞外奇芬碧玉濱
最是日三橋畔路 浀然起敬立如人


이 시는 보길도에 살던 강종철씨가 1972년 고산선생의 셋째부인인 설씨부인의 종가에서 족보를 뒤지다 족보속에 끼여 있는 부용동팔경(芙蓉洞八景)이라는 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지 반절지 2장에 붓글씨로 씌여진 이 글속에 석실모연이라는 차시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강종철씨는 우리나라에 차유적지가 갖추어야할 조건을 이만큼 갖추고 있는 곳이 어디 있겠느냐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고산선생이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발아래 펼쳐지는 부용동골짜기를 물들이는 저녁 노을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동천석실에서 고산선생의 차인생활을 그려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