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의 비조인 고산 윤선도 선생은 사대주의와 한문문학의 밀림 속에서도 우리 국어의 아름다움을 한껏 갈고 닦아내서 주체적 민족문화의 지평을 활짝 열어놓은 분입니다. 그러므로 선생의 자주적 문화정신과 업적에 대하여 늘 생각하고 그분의 정신과 업적을 이어 나가고자 애써 자신을 다스려나간다면 이야말로 위대한 조상의 후예로써 우리가 마땅히 하여야할 수분의 도리라 할 것입니다.
                                                      

- 고산문화제 개최사 중에서 -

 

 


    고산선생의 인물초상자료

    • 윤고산(尹孤山)!!

      내가 이 사람에 대해 깊이 감사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그 이름을 부르지 않고 반드시 고산(孤山)이라고 부르고, 고산이라고만 부르지 않고 반드시 윤고산(尹孤山)이라고 세 자로 부르는 것은 의도가 있는 것이다. 앞으로 국가에 큰 경사가 있으면 고산의 자손이 어찌 대대로 국가와 복록을 함께하지 않겠는가!  - 정조대왕 -

       

         고산선생에 관한 인물초상을 언급된 자료 등을 통하여 고산선생이 어떤 분이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선생은 그의 자(字) 약이(約而)와 호(號)가 고산(孤山)으로 그 성품을 짐작할 수 있다.
          *. 약이(約而)는 말이 간략하고도 뜻이 명확히 통함이란 뜻이다.
          *. 고산(孤山)은 바다 가운데 있는 듯 작으면서도 높이 외로이 홀로선 산이란 뜻이다.

      ♣ "용모가 단정하고 안색이 엄숙하며 굳세어 대하는 사람이 바로 볼 수가 없고 쏘아보는 눈빛이 섬연하다." 
                                                                                                            - 고산년보 3권 12장 뒤쪽

      ♣ “나는 자식이 없으나 효자를 얻었으니 한이 없다”                                  - 양부 관찰공(觀察公) 유기(唯幾)

      ♣ "윤선도는 큰 인물이나 그 기상이 두려울 정도로 살벌하여 후폐를 면치 못할까 우려가 된다."
         "내가 글자를 깨우친 것은 윤선도가 공들인 덕택이므로 항상 내가 마음 속으로 잊지 못했다."
         "이 사람은 아첨을 해서 뜻을 이루는 자가 아니다."                                - 효종

      ♣ "온 세상 사람이 잘못임을 알면서도 아무도 말하지 못할 때, 윤선도가 말하였으니 윤선도야 말로 다른 사람이 감히 못하는 말을 한 역시 과감한 선비입니다."                                       - 탄옹 권시 상소문에서

      ♣ "옛부터 나라가 흥하거나 망할 때에는 하늘이 반드시 한 사람을 내어 예를 지키고, 의에 죽게 하여, 한 세대를 깨닫게 하며, 후인을 가르치게 하는 일이 있으니 바로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윤선도는 본디 기개와 절개가 있어 과감히 말하는 선비 입니다."              - 용주 조경 상소문에서

      ♣ "그는 평소에 반드시 의관을 바르게 하고 종일 단정히 하여 비스듬히 앉는 적이 없었고, 한가한 때에도 조용히 태평하였고, 말은 빨리 하거나 당황하는 빛이 없었다. 또한 음식과 기거(起居)는 모두 항상 절도가 있어 비록 노복(奴僕)과 비첩(卑妾)이라도 일찍이 낮에 눕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위의(威儀)가 장중하고 도량이 깊고 넓어 보는 자가 모두 두려워해 그를 좋아하였다. "
         
      "윤선도는 의약, 복서, 음양지리까지 통달하였다."                                - 수찬 홍우원 상소문과 시장에서

      "길에서 서로 조문하기를 '윤선도가 석방되지 않았는데 하늘이 어찌 비를 내리겠는가'하며, 들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하기를 '윤선도가 석방되어야 하늘이 비를 내릴터인데'하고 있습니다." - 유학 이석복 상소문

      "참의 윤선도는 호가 고산인데 세상에서 오늘날의 무학이라고 부른다. 풍수지리의 학문에 대하여 본래 신안의 실력을 갖추었다."                                                                            - 정조

      "만약 제가 부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어려서 높이 과거하고 젊어서 경상에 오르는 것도 별로 구차하지 않게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평생동안 의를 지켜서 이런 것은 버리고 하지 않았으며 세로에 칠전팔도해도 오히려 거듭 참았고, 비록 천사 만종에 당하는 재물이나 칼 갈구리에 찔리거나 가마솥에 삶기어도 이 뜻을 바꿀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그만 둘 수 없었습니다.                               -고산선생 공사(供辭)에서 자평 

      "윤선도의 문장식견이 당대의 모든 선비 가운데서 단연 으뜸이라"고 인조에게 천거하였다.
                                                                                                         -전장(銓長) 장유(張維)

       

    고산선생의 문학사적 평가


       고산선생은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송강 정철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고 있으니, 송강이 가사문학의 대가라면, 고산선생은 시조문학의 으뜸이었다.


    ♣ 남파 홍우원(洪宇遠)은
    "앞사람을 이어받지 않고 새로운 경지를 세웠다.(不襲踏前人 創立新意)"라고 평하여 창의성을 높이 샀다.
    또 고산선생의 한시에 대해서도 '검옹지림(黔翁志林)'에서
    "고산 윤선도의 시는 옛 사람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틀을 잡아 마음대로 짓고, 뛰어나서 남들이 높이고 두려워 하게 했다.(尹孤山善道詩 不依古人 自出機
    ?放恣卓詭 有使人可敬而畏者)


    ♣ 영조때의 가객(歌客)인 김수장(金壽長)님은 『해동가요(海東歌謠)』에서
    "이분(고산)의 노래는 때묻지 않아 맑고 높으므로 우리로서는 올라갈 수 없는 만장봉이다.(然此翁歌法  脫垢淸高  吾觀之此 則難登萬丈之峯)"라고 청고한 시격(詩格)을 칭송했다. -고산어부사발문-


    ♣ 정인보(鄭寅普)님도 『정송강(鄭松江)과 국문학(國文學)』이란 글에서
    "고산은 대개 담아의 일경으로 나아가 저 강호연파에 배합되는데 좋다. 고산의 '어부사시사'에 "우는 것이 뻐꾸긴가 푸른 것이 버들숲가" 같은 것은 물외한인(
    物外閑人)의 우유(優遊)하는 심경을 흔적없이 나타냈고, "하마 밤들거냐 자규소래 맑게 난다" 같은 것은 호남 산수간의 야경(夜景)을 귀신같이 그려 놓았다."라고 말하였다.


    ♣ 조윤제(趙潤濟)님은 『한국시가사강(韓國時歌史綱)』에서
    "고산은 다른 작가에 특출하여 실로 시가로 인하여 조선어의 미를 발견하고, 그를 그의 시가상에 직접 시험하여 보았다."고 평하여 고산선생이 시조문학의 대가임을 극찬하였다.
    또『한국문학사』의 '고산조'에서도
    "시조문학역사 수백년에 드디어 우리는 위대한 시조인을 얻었다. 그는 즉 고산이다..... 그의 시가는 단순한 감흥의 표현이 아니고 자연과 완전 배합되며 또 자기자신의 현현으로서 나왔다. 이것이 고산의 위대한 점이다...... 고산의 자연은 자연이라기보다는 약동하는 생명이다. 고산의 시조는 자연의 소리요, 자연미의 율동이다. 고산은 자연시인으로 시조의 절묘를 얻어 시조문학의 진가를 최고로 발휘하였다. 고래로 시조작가가 수없이 많아 간혹 특출한 절품이 전혀 없었던 바는 아니지만, 그들의 작품을 통판할 때 고산만큼 대성한 이는 일찍이 없었다. 이런 점으로 보아 고산은 확실히 시조에 있어 최고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김사엽(金思燁)님도 『국문학사(國文學史)』에서
     "고산으로 말미암아 조선어의 미가 발견되었고, 조선어를 예술적으로 순화양양했다고 본다. 송강이 이미 가사를 통하여 더없이 아름다움을 밝혀 놓았거니와 고산에 이르러 한 겹 더깊이 넓게 되고, 캐내어 그 아려함을 천명하였다. 한문이란 밀림 속에서 유교라는 정글속에서 우리말을 찾기란 그 당시에 있어서 지난하다기 보다 불가능에 가까운 공부이었을 것인데 대담하게도 이것을 시험해서 훌륭히 성공하였다. 여기에서도 단가에 있어서는 월계관을 고산옹에게 올려야 하겠다."


    ♣ 이재수(李在秀)님은 『윤고산연구(尹孤山硏究)』란 저서에서 고산선생이 가요의 대가임을 이렇게 평했다.
    "평범한 시재에다 고결한 인격의 향기를 융합시켜 세련된 수법으로 그려낸 것이 그의 단가다. 그 작품은 평범하게 보이나 음미하면 할수록 의의가 심원하고, 표현과 내용이 소박하면서도 고아하고, 고전미가 있다. 고산작품의 가치는 시정보다도 표현의 미에 있다. 특히 그가 조선어를 교묘히 구사한 것은 특필하여야 된다. 과거 한학자들은 생각하는 것이 도학이요, 붓끝에 튀어나오는 것이 한문숙어인데 조선어의 중요성을 창도한 이가 전대에 이퇴계가 있었고, 후에는 김서포가 있었지만 조선어는 고산에 의하여 미가 부여되며 예술어화하였다. 이 점은 고산이 송강의 높은 시재와 대치하여 조선 가요사상에서 쌍고봉이 되는 까닭이다."


    ♣ 시인 윤곤강(尹崑崗)님도 『고산가사(孤山歌辭)』에서 고산의 작품 경향과 수법을 말하되
    "그의 작품은 돈후 화이를 주지호 한 듯하며, 어느 것을 보아도 모두 유창하고 평명하다. 그의 시조는 되도록 평명한 것을 주지로 삼으면서도 사람의 간장을 파고드는 알 수 없는 박력을 갖고 있는 것은 어귀음률이 깍고 다듬어져서 순연한 예술의 경지를 나타내 주는 데 있다......고산의 시조야말로 탄이하고 소박하면서도 속되지 아니한 참으로 사람의 냄새를 풍기는 가장 보통성을 가진 예술일 것이다.


    ♣ 박성의(朴晟義)님도 『송강ㆍ노계ㆍ고산의 시가문학』에서
    "과연 고산은 자연시인으로서 시조의 절묘를 얻어 시조문학의 가치를 최고도로 발휘하였으니, 시조의 나아갈 길은 고산에 이르러 거의 절정에 달한 느낌이 난다. 이런 의미에서 고산은 근세 시조문학의 제일인자이다."


    정병욱(鄭炳昱)님은 『윤고산론(尹孤山論)』에서
    "국어미(國語美) 조탁(彫琢)의 천재(天才)"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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